content="user-scalable=no, initial-scale=1.0, maximum-scale=1.0, minimum-scale=1.0, width=device-width"> 동춘당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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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동춘당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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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계기

나의 고향은 대전이다.

자란 곳이자 부모님이 계신 곳은 서구이지만 나는 사정상 최근까지 동구에서 산 적도 많다.

내가 살던 곳에서  보건대로 가는 길에는 박팽년 유허가 있고

보건대에서 조금 더 가면 우암사적공원이 있다.

가까운 대덕구에는 동춘당이 있다. 

전부터 이 세 장소에 관련된 역사와 박팽년, 송시열(우암은 송시열의 호다), 송준길(동춘당의 주인)에 대해 궁금했었다. 

 

*답사 일정: 5월 6일

*동선: 동춘당 입구에서부터 한바퀴 돎

*동행자: 남편, 아들, 딸

*소감: 내가 궁금한 점에 대해 조사하여 알게되어 의미 있었다.   

 

1. 동춘당은 풍수적으로 어떠한가?

 

잠깐 대전에 대한 배경지식을 공유하자면,

대전은 동부(동구, 대덕구), 서부(서구, 유성구)의 격차가 꽤 큰 도시이다. 

대전의 동부 서부는 마치 각각 서울의 강북 강남과 흡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느껴진다. 

서울의 강북과 대전의 동부에 조선시대때 사람이 많이 살았고  

현재 강남의 집값이 비싸듯이 대전 서부의 집값이 비싸다.  

 

대전 대덕구에 있는 동춘당에는 산책겸 종종 갔었다. 그런데 과제를 하려고 생각해 보니 

'당'이라는 글자에는 종교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란 짐작을 하게되었다. 

왜냐하면 사당, 법당...이런 말이 있으니까!  

그런데 찾아보니 동춘당의 당은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라 별당 경로당 등 집같은 공간을 나타내는 것 같다.

 

새롭게 안 사실은 同春堂이 송준길의 호라고 한다

왜 집이름이 호일까? 집=나 라고 할만큼 집에 애착이 있었다고 추측해보았다.

 

<동춘당의 위치> 동춘당 공원 안에 '진짜' 동춘당이 있다.

즉, 공원이기 보다 유적지였다!

'진짜' 동춘당의 모습은 다음의 사진들과 같다.

동춘당 (공원)안의 동춘당의 모습
동춘당 (공원) 안의 동춘당 담장

              

<인증샷> 동춘당 야경을 보며

 

야간에 불빛도 들어오고 풀과 나무도 많고 넓은 편이여서 평범한 공원이라고 충분히 오해할 수 있다.

 

2. 송준길, 송시열, 박팽년은 어떠한 관계가 있을까? 

 

#송준길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 기호학파의 거두인 사계 김장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친척인 우암 송시열과 함께 '양송(兩宋)'이라 불리는 거유(巨儒). 인조, 효종, 현종때 활동함.

사망은 충청도 회덕현[3] 내남면 송촌리에서 했다. 
(현 대전광역시 대덕구 송촌동)

출처: 나무위키

 

조선 중기 문신 겸 학자. 송시열 등과 함께 북벌 계획에 참여했으며 서인에 속해 분열된 서인 세력을 규합하는 데 힘썼다. 학문적으로는 송시열과 같은 경향의 성리학자로서 특히 예학에 밝고 이이의 학설을 지지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뛰어났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송준길 [宋浚吉]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동춘당이 속한 대전 땅에는 갑천이 가로질러 흐르고 있으며 금강이 흐르고 계룡산, 계족산 등에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다( 초등학교때 대전의 생활에서 배운 내용이다).

특히, 동춘당에 나름 가깝게  계족산이 있고 갑천도 흐르며, 동춘당 공원 내에 연못도 있다. 

따라서 동춘당 혈자리가 나름 길지에 속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하지만 이렇게 따지면 대전이 다 길지가 될 것 같고,

동춘당 터만 따졌을 때는 강과 산에 아주 가깝게 둘러싸인 형태는 아니여서 완벽한 길지는 아닐 것 같다. 무덤이 아니라 막 명당에 지은 것은 아니지 않을까?   

 

#송시열

조선 후기 문신 겸 학자, 노론의 영수. 주자학의 대가로서 이이의 학통을 계승하여 기호학파의 주류를 이루었으며 이황의 이원론적인 이기호발설을 배격하고 이이의 기발이승일도설을 지지, 사단칠정이 모두 이라 하여 일원론적 사상을 발전시켰으며 예론에도 밝았다. 주요 저서에는 《송자대전》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송시열 [宋時烈]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일단, 나무위키에도 송준길이 송시열과 친척이라고 나왔다. 은진 송씨라고 한다.

심지어 宋村洞송촌동은 (은진) 송씨들의 마을이란 뜻이란다.

대전에서 알던 언니가 송씨인데 송시열 후손이라고 하였다.

또, 배우 송중기가 대전 출신(심지어 대덕구 송촌동 선비마을 출신)이라 혹시나 하고 검색해보니 은진 송씨이다.

 

 그렇다면, 이제 박팽년에 대해 알아보자. 

 

#박팽년

조선전기 충청도관찰사, 형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인수(仁叟), 호는 취금헌(醉琴軒). 회덕(懷德) 출신.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지조있으시고 훌륭하신 분이시지만

고문으로 죽었을 정도면 후손들이 노비가 되지 않았으려나?

찾아보니 역시나 박팽년이 세조에 의해 화를 당한 후, 그 후손들이 대구 지방으로 흘러들어가 가난하게 살았다고 지식백과에 나온다. 그 이후에는 후손들이 다행히도 신령한 꿈을 통해 우연히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박팽년은 조선 전기 문신이고, 송준길과 송시열은 조선 중기이며, 박팽년 후손들은 대구로 건너갔기 때문에  관련이 없을 것 같지만, 박팽년유허비를 송준길과 송시열이 썼다고 한다!  이들이 모두 대전 대덕구와 동구의 서로 가까운 장소에서 거주하거나 수학하였으므로 후대의 사람들인 송준길과 송시열이 박팽년을 기릴 기회가 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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